요즘은 전국 어느 동네를 가도 CCTV(Closed Circuit Television/폐쇄회로 텔레비전)가 흔하지만, 40여 년 전에는 요즘처럼 디자인도 다양한 CCTV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옛날에는 고속도로조차 CCTV가 없었으니, 추석이나 명절 때 교통 위반 차량 단속은 당연히 고속도로순찰대 경찰 아저씨들이 커다란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 같은 것을 타고 고속도로를 누빌 때였다.

육중한 오토바이 몸체에 사이렌을 울리면서, 뒤 트렁크 옆에는 긴 안테나까지 주렁주렁 매달고 달리는 모습이 당시 세계적인 미남 배우 숀 코네리처럼 멋있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순찰대의 활약상을 그린 미드 '기동순찰대' 속 선글라스를 낀 멋진 장면을 연상케 했다.

특히 멋진 제복과 진한 색깔의 선글라스로 치장하고 위반 차량을 잡기 위해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모습은 남자 어린이와 청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중·고생들의 미래 직업으로 '고속도로순찰대 아저씨'를 꼽았을까.

지금은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이 "전방에 단속 구간이 있습니다"라며 알려줘 고맙지만, 40여 년 전 당시에는 단속 경찰이 홍길동처럼 갑자기 출몰해 운전자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방송국 입사 초년생은 추석 연휴에 쉬는 선배를 대신해 근무해야 했던 시절.

지금과 달리 스마트폰 문자가 아닌 일반 전화로 사건·사고 제보를 받을 때, 화가 잔뜩 난 시청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방송국이죠? 추석에 기분 좋게 고향 가는데, 치사하게 커브길에 숨어서 단속하는 게 말이 됩니까?"

고속도로순찰대 경찰이 단속 건수를 올리기 위해 함정 단속을 벌인다는 제보였다.

곡선 도로 모퉁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과속 차량을 단속하면, 단속 그물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주장이다.

"네, 경찰 단속 방법이 좀 치사하긴 하지만 선생님도 과속을 하셨으니 잘한 건 아니시죠?"라는 말에, 제보자는 좀 더 떳떳하게 단속하라는 주장을 하면서도 자신의 과속 잘못은 인정했다.

그날 저녁 뉴스 앵커 오프닝이 시작됐다.

추석 고속도로 경찰의 '함정 단속' 같은 진부한 멘트 대신, "고속도로순찰대 일부 아저씨들이 어린아이처럼 술래잡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도 술래잡기 전에는 룰을 정하고 노는데, 경찰 아저씨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하네요."

"더구나 술래가 눈을 너무 빨리 떠 반칙까지 한다네요. 경찰 여러분, 술래잡기는 명절에 고향 가서 동무들과 하면 어떨까요?"

방송이 끝나자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참, 방송도 얄밉게 하시네요! 나 이제부터 당신 뉴스 안 봐!"라며 전화를 딱 끊어 버렸다.

지금 같으면 발신 번호가 떠서 방송 멘트를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날 이후 시청률은 계속 올라가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고, 창사기념일에는 상까지 받았다.

지난 1983년 말부터 사라졌다는 고속도로순찰대 오토바이를 탔던 그 멋진 아저씨들은 지금쯤 연세가 80세 이상 되셨을 것이다.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작가 박붕준은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강릉 MBC, 대전 MBC TV&라디오 뉴스 앵커, 보도국장 역임 후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2023년 2월말 퇴임 후 충청헤럴드와 뉴스대전톡, 문원미디어 및 개인 자서전 취재 작가와 함께, 대학신문과 기관 뉴스레터 제작 등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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